인간 · SP-0027
인류는 멸종하지 않았다
인류는 멸종하지 않았다.
오히려 완벽하게 살아남았다.
너무 완벽하게 살아남아서,
세상에 인간 말고는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되었을 뿐이다.
나무도 인간이다.
가로수의 결을 자세히 보면
핏줄 같은 섬유가 흐른다.
비 오는 날이면
껍질 사이에서
체온 같은 김이 올라온다.
잡초도 인간이다.
잘려나간 풀잎 단면에서
머리카락 같은 조직이 엉겨 붙는다.
건물도 인간이다.
압축한 골조,
갈아 넣은 칼슘,
단열용 지방층,
흡음용 장기 조직.
인간은
도시가 되었다.
저기 풀을 뜯는 토끼도 인간이다.
귀가 길어지도록
개량된 인간 조직.
초식 동물의 형태가
더 효율적이라서
그렇게 만든 것뿐이다.
애완동물도,
가축도,
해충도,
전부 인간이다.
어제 레스토랑에 납품된 고기도 인간이었다.
정육점에 걸린 소시지도
인간 소시지였고,
통조림 안의 덩어리도
인간이었다.
반죽에 들어가는 가루도
인간 가루.
아침마다 빵집에서 날리는 밀 냄새 속에는
희미하게
단백질 타는 냄새가 섞여 있었다.
사람들은 처음엔 불쾌해했다.
하지만 오래 지나지 않아
익숙해졌다.
어차피
인간밖에 안 남았으니까.
오히려 문제는
맛이었다.
“송아지가 왜 비싼 줄 알아?”
늙은 정육사는
그렇게 말했다.
“부드러워서?
다들 그렇게 알고 있지.”
그는 진열장 안 고기를
손가락으로 눌렀다.
“실제로 중요한 건 호르몬이야.”
“가장 맛있는 시기가 있어.
공포,
안정,
애착,
의존,
성장욕.
그게 가장 적절하게 분비되는 순간.”
“그때 도축하는 거야.”
사람들은
어린 개체를 좋아했다.
연하고,
부드럽고,
감정 분비가 풍부했으니까.
두려움을 많이 배운 개체는
풍미가 깊었고,
사랑을 많이 받은 개체는
지방층이 달았다.
우울증 성향은
쓴맛이 올라왔고,
강한 생존 본능은
질긴 탄력을 만들었다.
그래서 교육 시설이 바뀌었다.
학교는 사육장이 되었고,
상담사는 정서 조율사가 되었다.
아이들에게 적절한 스트레스를 주고,
적절한 애정을 공급하고,
호르몬 수치를 기록했다.
이제 인간성을 제거하는 단계는 지났다.
그건 초기 모델이었다.
단순히 인간을 고기로 바꾸는 건
수준 낮은 발상이었다.
중요한 건
생물의 기능이 아니다.
맛이다.
어떤 감정을 넣으면
지방이 부드러워지는지.
어떤 기억을 심으면
육질이 달아지는지.
어떤 트라우마가
감칠맛을 만드는지.
인간은
더 이상 인간을 키우지 않았다.
출시했다.
“자연 감정을 최대한 보존한 프리미엄 개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