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 SP-0019
악은 그 순간에 머문다
누군가는 묻는다.
다섯 명을 살리기 위해 한 명을 희생시키는 것이 옳은가.
사람들은 그것을
트롤리 딜레마라고 부른다.
하지만 나는
그 질문이 틀렸다고 생각한다.
정말 중요한 것은
어떤 선택이 옳았느냐가 아니다.
그 선택을 한 뒤,
**그 순간에 태어난 악을
평생 견딜 수 있느냐**
사람은 시간이 지나면
상처를 잊는다.
세상도 사건을 잊는다.
뉴스는 며칠 지나지 않아
다른 사건으로 덮이고,
사람들은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한다.
하지만
악은 다르다.
악은 시간이 흐른다고
사라지지 않는다.
한 번 태어난 악은
그 순간에 머물며,
아주 천천히
사람을 좀먹는다.
잠든 밤에도.
거울을 바라볼 때도.
웃고 있는 순간에도.
문득 이유도 없이 떠오르는
기억 속에서.
그것은
끊임없이 속삭인다.
**'다시 그 순간으로 돌아간다면,
너는 이번에도 같은 선택을 할 거잖아.'**
그 한마디면 충분하다.
사람은 스스로를 의심하기 시작하고,
끝내 자신을 용서하지 못한 채
무너진다.
나는 그것이
어떤 것인지 안다.
왜냐하면
나는 그 순간을 살아남았으니까.
그날은 유난히 추운 겨울 아침이었다.
밤새 녹았던 도로 위의 물이
다시 얼어붙을 만큼 차가운 날이었다.
나는 평소처럼
출근길을 달리고 있었다.
시속 70킬로미터.
시내는 평화로웠다.
브레이크를 밟기 전까지는.
며칠 뒤 경찰은
그것이 블랙아이스였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 순간의 나는
그런 것을 알 리 없었다.
설령 알았다고 해도
달라질 것은 없었을 것이다.
브레이크가 전혀 듣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맞은편에서는
덤프트럭이 달려오고 있었다.
정면으로 들이받으면
나는 죽는다.
본능적으로 핸들을 틀었고,
가까스로 트럭을 피했다.
하지만 그 대가로
차는 인도를 향해
미끄러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때였다.
세상이 멈췄다.
정확히 말하면
시간이 멈춘 것처럼 느껴졌다.
눈발은 허공에 멈춰 있었고,
지나가던 사람들의 발걸음도
그대로 굳어 있었다.
아이들의 웃는 표정도,
바람에 흩날리던 머리카락도
모두 멈춰 있었다.
움직일 수 있는 것은
오직 나뿐이었다.
나는 천천히
시선을 들었다.
등굣길이었다.
대여섯 명의 아이들이
나란히 걸어가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그대로 들이받는다.
그 순간
내 머릿속은
미친 듯이 계산하기 시작했다.
왼쪽으로 그대로 가면
다섯 명이 죽는다.
오른쪽으로 핸들을 꺾으면
맨 뒤를 혼자 걷던 아이
하나만 친다.
처음에는
사람을 살려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하지만 그 생각은
아주 빠르게
다른 모습으로 변했다.
다섯 명을 치면
나는 살인자가 된다.
다섯 가정이 무너질 것이다.
배상금도,
재판도,
언론도,
내 인생도
모두 끝난다.
하지만
한 명이라면.
빙판길 사고로
한 사람이 죽는 일은
겨울이면 흔한 뉴스다.
보험도 처리될 것이다.
사람들은
운이 없었다고 말할 것이다.
그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나는 사람의 목숨을
세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내 인생의 손익을
계산하고 있었다.
그 아이와
눈이 마주쳤다.
도망치지도 못한 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핸들을 오른쪽으로 꺾었다.
그 순간
시간이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
차는 인도로 올라탔고.
둔탁한 충격이
한 번 전해졌다.
그리고 나는
정신을 잃었다.
그 후의 일은
기적처럼 흘러갔다.
언론은
블랙아이스의 위험성만을 떠들었다.
경찰도
사고라고 결론 내렸다.
보험사는
모든 일을 처리했다.
죽은 아이는
부모의 보살핌조차 제대로 받지 못하던
아이였다고 했다.
세상은 그 일을
안타까운 사고 한 줄로 끝냈다.
아무도
나를 비난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그것은
사고가 아니었다.
나는
선택했다.
그날 이후
나는 단 하루도
편히 잠든 적이 없다.
꿈속에서는
언제나 시간이 멈춘다.
그 아이는
늘 같은 자리에서
나를 바라본다.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 침묵이
나를 가장 미치게 만든다.
나는
매일같이
그 순간으로 돌아간다.
매일같이
핸들을 잡는다.
매일같이
계산한다.
그리고
매일같이
같은 선택을 한다.
이제는 안다.
나를 괴롭힌 것은
그 아이의 원혼도,
벌도 아니었다.
그 순간 태어난
악이었다.
그 악은
그날 이후
단 한 번도
그 자리를 떠난 적이 없었다.
나는 이제
그 순간을 끝내려 한다.
이 글을 남기고
목에 밧줄을 걸었다.
의자를 발로 차려는 순간.
그날처럼
시간이 다시 느려졌다.
그리고
나는 깨달았다.
사람들은
악을 멀리 있는 무언가라고 생각한다.
악마를 만들고,
운명을 탓하고,
상황을 원망한다.
하지만 그날.
나를 핸들 위로 밀어 넣은 것은
누구도 아니었다.
살 수 있다고 계산한 것도.
한 사람이면 괜찮다고
합리화한 것도.
결국은
나였다.
그 순간에는
악마 같은 것은 없었다.
**악은 처음부터
내 안에 있었다.**
**그리고 그 악은,
지금도 그 순간에 머물러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