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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 SP-0020

저주

STORY BY JAEI JEON6분 읽기2,532
#심리공포#인간공포
CONTENT NOTE · 공포 및 불쾌감을 유발할 수 있는 표현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1/

저주…라는 건 말이야.
일반적인 악의로는 안 되는 거야.

2/

"어떻게 해버렸으면 좋겠다."

같은 마음으로
저주를 걸면 안 돼.

3/

벌을 주고 싶다거나,
망했으면 좋겠다거나,
결과를 바라는 순간,

4/

그건 그냥
분노지,
저주가 아니야.

5/

저주는
목적이 있으면 안 돼.

6/

단순히
저주받는 것,
그 자체가 목적이어야 해.

7/

그래서

"저주를 걸어서 어떻게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저주는 의미를 잃어.

8/

의미를 잃은 저주는
방향을 잃는다.

9/

그리고
어디로 갈지 모른 채
가장 가까운 곳을 붙잡아.

10/

보통은
저주를 건
사람이다.

11/

처음엔
그냥 악몽인 줄 알았다.

12/

자취방에서 자고 있다가
새벽 3시쯤
눈이 떴다.

13/

답답해서 깼는데
방 안에 냄새가 났다.
습하고 퀴퀴한데,
어딘가 달았다.

14/

창문을 열면 사라졌다.
그래서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15/

다음 날도
같은 시간에 깼다.
같은 냄새.

16/

그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17/

일주일쯤 지나서
알아차렸다.
냄새에
방향이 있다는 걸.

18/

왼쪽이었다.
내 왼쪽.
침대 바로 옆.

19/

고개는 돌리지 않았다.
왜인지는 모르겠는데,
돌리면 안 된다는 걸
알고 있었다.

20/

이불을 뒤집어쓰고
아침까지 버티면
끝이었다.

21/

아홉째 밤.
단계가 올라갔다.

22/

눈을 떴는데
냄새도 있고,
숨소리도 있는데.

23/

뭔가가
달랐다.

24/

이불이
눌리고 있었다.

25/

정확히는
이불 위에
뭔가가
올라와 있는 무게감.

26/

무겁진 않았다.
고양이 정도.
아니,
갓난아이 정도.

27/

내 왼쪽.
침대와 벽 사이,
그 좁은 공간에서
이불을 누르고 있었다.

28/

웃음소리가
더 가까워졌다.

29/

아까는
귀 옆이었다.

30/

이번엔
귀 안이었다.

31/

고막 바로 앞.
밖에서 안으로
밀려 들어오는 느낌.

32/

나는
소리를 질렀다.

33/

소리를 지르면
사라질 줄 알았다.

34/

안 사라졌다.

35/

내 비명 사이사이에
후,
후후.

36

마치
내가 소리 지르는 게
재밌다는 것처럼.

37/

그때 알았다.
무서운 것 앞에서는
소리를 질러도
아무 소용이 없다는 걸.

38/

상이
점점
심해졌다.

39/

밤에 깨는 시간이
빨라졌다.

40/

3시에서
2시로.

41/

2시에서
1시로.

42/

잠드는 시간은
늘 비슷했다.
자정쯤.

43/

그러면
잠은
한 시간.

44/

그게
매일이었다.

45/

그리고
웃음소리는
밤에만
나지 않게 됐다.

46/

출근길
버스 안에서.
왼쪽에서
후,
후후.

47/

회사에서
전화 받다가.
후,
후후.

48/

화장실에서
혼자 있을 때.
후,
후후.

49/

하루 종일.

50/

미칠 것 같았다.

51/

아니,
이미
미치고 있었던 것 같다.

52/

집중이 안 됐다.
머리가
자꾸 비었다.

53/

밥맛이 없었다.
하루 한 끼도
버거웠다.

54/

3주 만에
5킬로가
빠졌다.

55/

그때 확신했다.
이건
밤만 버티면 되는 일이
아니라는 걸.

56/

이쯤 되면
사람은
누군가에게 매달리게 된다.

57/

절에 갔고,
신사에 갔고,
기억나는 곳은 전부 갔다.

58/

돌아오는 말은
늘 같았다.

59/

"괜찮을 거야."

60/

괜찮을 거야.

61/

괜찮을 거야.

62/

그 말은
위로가 아니라
문을 닫는 소리처럼 들렸다.

63/

말을 할수록
사람이 사라졌고,
설명할수록
내가 이상해졌다.

64/

이건
무서운 일을 겪는 게 아니라,
출구 없는 곳에
떨어진 느낌이었다.

65/

그리고
그 감각이
조금씩
익숙해졌다.

66/

그러다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67/


나만
이렇게 아파야 하지.

68/

이건
한 사람 몫으로는
너무 오래 간다.

69/

그래서
말로 옮기면
조금은
흩어질 줄 알았다.

70/

누군가 읽으면
조금은
내 쪽이 가벼워질 줄 알았다.

71/

그런데
쓰고 나서야
알았다.

72/

이건
사라지는 게 아니라
옮겨 붙는다는 걸.

73/

지금
이 문장을
천천히 읽고 있는 너.

74/

혹시
시간을 한 번
확인했을지도 모른다.

75/

아무 이유 없이
방 안을
의식했을지도 모른다.

76/

방향은
굳이 말하지 않겠다.

77/

이미
알고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78/

괜찮을 거라고
정리하고 있지.

79/

다들
그렇게 말한다.
나한테도
그랬다.

80/

그래서
하나만 말해 둔다.

81/

이 글은
경고가 아니다.

82/

부탁도 아니다.

83/

다만
같은 시간에
같은 문장을
같이 떠올렸을 뿐이다.

84/

저주에는

85/

두 번째 규칙이 있다.

86/

알려고 하지 말 것.

86/

지금처럼.

이 기록은 여기서 끝났습니다.
하지만 아카이브는 계속됩니다.

CREATOR

JAEI JEON

괴담을 기록하고 편집하는 J_SP4DE의 창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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