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승과 무속 · SP-0009
흉가
외할머니 댁은
시골 전원주택이었다.
그 동네는 이상하게도
새벽만 되면
안개가 무릎 높이까지 차오르는 곳이었다.
집 뒤에는 큰 밭이 하나 있었고,
그 밭 끝에는
아무도 살지 않는 흉가가 있었다.
창호지는 군데군데 찢겨 있었고,
마당에는
버려진 장독대만 몇 개 굴러다니는 집.
어른들은
그냥 오래된 빈집이라고 했지만,
나는 열한 살이었고,
그 집 앞만 지나도
괜히 뛰어서 지나가곤 했다.
어느 해,
태풍이 몰아치던 밤이었다.
밖에서
고양이 울음소리가 계속 들렸다.
비를 맞으며 울고 있는
새끼 고양이를
겨우 데려와 키우게 됐다.
조금 이상한 고양이였다.
늘 높은 나무 위에 올라가
나를 기다렸고,
내가 학교에서 돌아오는 시간만 되면
어디선가 나타났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할머니가 차를 후진하다가
그 고양이를 치어 죽였다.
수건에 곱게 싸서,
밭 끝 흉가 근처에
묻어 주었다.
그리고
열두 살이 되던 해.
매일 밤,
그 밭에서
누군가 흐느끼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처음엔 바람인 줄 알았다.
하지만 밤마다 같은 시간.
계속 들렸다.
어린 마음에도
화가 났다.
'도대체 뭐길래.'
손전등 하나 들고,
흉가 앞에 도착했을 때,
닫혀 있어야 할 창호문이
반쯤 열려 있었다.
수십 년은 비어 있던 집이었다.
사람이 있을 리 없었다.
그런데 안에서,
낮게 신음하는 소리가 들렸다.
"...못 나가..."
"...나 못 나가..."
늙은 남자의 목소리였다.
숨이 넘어갈 듯 힘겹게,
계속 같은 말만
반복하고 있었다.
무슨 생각이었는지,
나는 창호문 틈으로
안을 들여다봤다.
방 한가운데,
허리가 완전히 굽은 노인이
등을 돌린 채 앉아 있었다.
낡은 흰 적삼을 입은 채,
고개도 들지 못하고
중얼거리고 있었다.
"...못 나가..."
그 순간,
노인의 뒤에서
손 하나가
천천히 올라왔다.
사람 손이었다.
그 손이
노인의 눈을 가리자,
뒤에서
빨간 립스틱을 짙게 바른 여자가
얼굴을 내밀었다.
무당 옷을 입고,
입이 찢어질 듯 웃으며 말했다.
"이리 와."
그 여자는
입이 찢어질 듯 웃고 있었다.
빨간 립스틱이
귀 끝까지 번져 있었다.
찢어진 손을
부채처럼 흔들며,
천천히,
나를 향해 손짓했다.
"이리 와..."
"...이리 와..."
"내가 재밌게 해줄게."
"내가 웃게 해준다니까."
"...이리 와."
처음에는
사람 목소리였다.
그런데 점점
웃음과 말이
뒤섞이기 시작했다.
"이리 와."
"이리 와."
"이리 와."
"이리 와."
"이리 와."
"이리 와."
"이리 와."
"이리 와."
"이리 와."
"이리 와."
"이리 와."
"이리 와."
"이리 와."
"이리 와."
"이리 와."
"이리 와."
"이리 와."
"이리 와."
"이리 와."
"이리 와."
끝없이.
숨도 쉬지 않고.
같은 말만 반복했다.
웃음소리도 아니고,
주문도 아니고,
누군가의 머릿속을 파고들어
발걸음을 움직이게 만드는 소리였다.
나는 분명
도망치고 싶었는데,
어느새 한 발.
또 한 발.
그 집 안으로
걸어 들어가고 있었다.
그 순간,
시선이 마당으로 향했다.
깨져 있던 장독대 사이로
까마귀 한 마리가 보였다.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았는지,
검은 깃털 사이로
붉은 피가
장독대를 타고
천천히 흘러내리고 있었다.
계속해서,
그 여자는
나를 불렀다.
"이리 와..."
"이리 와..."
이미 넝마처럼 찢어진 손을
부채를 펼치듯 흔들면서.
무당이 굿을 벌이듯,
몸을 비틀고,
미친 사람처럼 춤을 추며,
쉴 새 없이 웃었다.
"이리 와..."
"내가 웃게 해줄게."
"하하하하하..."
그 웃음은
점점 커졌고,
굿판의 장단처럼
내 심장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그 순간이었다.
어디선가,
고양이가
찢어질 듯한 울음소리를 냈다.
"야아아아옹—!!"
순간,
그 여자의 웃음이 멎었다.
얼굴이 굳어졌다.
"...저 새끼."
"...죽여 버린다."
"...찢어 죽일 거야."
"죽인다."
"죽인다."
"죽인다."
"죽인다."
"죽인다."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귀가 찢어질 것 같은 비명이
폐가를 뒤흔들었다.
사람 목소리도,
짐승 울음도 아니었다.
온몸의 핏줄이
터질 듯한 괴성.
창호지가 덜컹거리고,
장독대가 흔들리고,
까마귀 깃털이
허공으로 흩날렸다.
그 비명을 듣는 순간,
나는 숨도 쉬지 못한 채
뒤를 돌아
뛰기 시작했다.
그런 흔해빠진,
어린 시절 무서운 이야기다.
서른이 넘은 아직도
그려낼 수 있을 만큼
강렬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