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승과 무속 · SP-0008
창귀
호환마마라고 한다.
호랑이에게 물려간 사람은
죽어서도 산을 떠나지 못하고,
창귀가 되어
겨드랑이 사이에서 다음 희생자를 홀린댔다.
사실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
호랑이를 마주친 순간에는.
창귀가 된 친구든,
그게 내 이름을 부르고 있든,
아니면 지금 저 아래에서
목이 뜯긴 채 꿈틀거리는 내 친구건.
중요한 건 하나뿐이다.
도망쳐야 한다.
살아야 한다.
그래.
저건 창귀다.
창귀인 것이다.
나는 지금
창귀에게서 도망치는 거다.
그렇게 생각해야만 했다.
그래야만
뒤에서 들리는 비명을
외면할 수 있었으니까.
“야…”
“야… 잠깐만…”
눈밭 뒤쪽에서
젖은 숨소리가 따라왔다.
나는 죽을 듯이 산을 내려갔다.
발이 미끄러지고,
손바닥이 다 까져도
멈출 수 없었다.
근데 이상했다.
뒤에서 들리는 목소리가
점점 또렷해졌다.
마치 바로 등 뒤에서
걷는 것처럼.
“나 아니야…”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를 즈음,
친구 목소리가
그렇게 말했다.
“나 안 물렸어…”
나는 이를 악물고 뛰었다.
아니야.
속지 마.
창귀는 사람 목소리를 흉내 낸다.
분명 그렇게 들었다.
그러니까 저건
준호가 아니다.
준호 흉내를 내는
무언가다.
그 순간,
뒤에서 무언가 넘어지는 소리가 났다.
쿠당탕—
눈 뭉치가 굴러 떨어지고,
짐승 울음 같은 게
산 아래를 긁었다.
그리고 이어서 들린 비명.
이번엔 진짜였다.
목이 찢어지는 소리.
숨이 끊어지는 소리.
사람이 죽을 때 나는 소리.
나는 그제야 확신했다.
그래.
준호는 이미 죽었다.
지금 내 뒤에서 따라오는 건
창귀다.
근데 이상한 건
그다음이었다.
한참을 뛰어 내려와
등산로 입구 불빛이 보이기 시작했을 때.
뒤에서 따라오던 발소리가
멈췄다.
그리고 아주 멀리서,
산 위쪽에서
호랑이 울음소리가 들렸다.
그 직후였다.
내 바로 뒤에서,
거의 귀에 입을 붙인 거리에서
준호 목소리가 속삭였다.
“…이제야 살았다.”
살아남았다.
나는 살아남았다.
눈밭을 구르듯 내려와
산 아래 도로를 보았을 때,
그제야 다리에 힘이 풀렸다.
숨이 끊어질 것 같았다.
폐가 찢어지는 것처럼 아팠고,
입 안에서는 피 맛이 났다.
하지만 살아 있었다.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뒤를 돌아보지는 않았다.
끝까지.
산 입구 불빛 아래로 뛰어들 때까지도,
지나가던 트럭이 급하게 멈춰 설 때까지도,
나는 절대로 뒤를 보지 않았다.
창귀는
뒤돌아보는 순간 홀린다고 했으니까.
사람들이 무슨 일이냐고 물었지만
나는 제대로 대답도 못 했다.
그저 산에,
호랑이가 있다고만 말했다.
다들 미친놈 보듯 했다.
당연했다.
이 시대에 무슨 호랑이냐고.
하지만 경찰은 올라갔다.
그리고 다음날,
준호 시체가 발견됐다.
목이 반쯤 뜯겨 있었다고 했다.
짐승 짓 같았다고 했다.
근데 이상한 건,
시체 상태였다.
죽은 지 꽤 지난 것처럼
몸이 굳어 있었다고 했다.
분명 몇 시간 전까지
내 옆에서 같이 뛰고 있었는데.
그 얘길 듣는 순간,
등골이 서늘해졌다.
아니야.
그럼 어제 내 뒤에서
계속 따라오던 건
뭐였지?
그날 이후로
나는 산 근처도 가지 않았다.
창문도 꼭 잠그고 잤고,
밤에는 이어폰도 끼지 않았다.
혹시라도
무슨 소리를 들을까 봐.
근데 사람은 결국 익숙해진다.
몇 달 지나니까
나도 조금씩 괜찮아졌다.
악몽도 줄었고,
준호 생각도 덜 났다.
살아남은 사람은
원래 그렇게 산다.
그래서 방심했다.
어젯밤이었다.
야근하고 집에 돌아오는데,
골목 입구에서
누가 날 불렀다.
“야.”
순간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근데 돌아보니
아무도 없었다.
웃긴 건,
그 목소리가 너무 자연스러웠다는 거다.
정말 그냥,
오래 알고 지낸 친구가
아무 생각 없이 부르는 것 같은 목소리.
나는 애써 무시하고
집으로 들어왔다.
분명 끝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근데 새벽 두 시쯤,
잠결에 이상한 걸 느꼈다.
누가 침대 옆에 서 있었다.
눈은 감은 채였다.
근데 알 수 있었다.
사람은 가끔,
안 봐도 느껴질 때가 있으니까.
그리고 아주 천천히,
젖은 숨소리가 들렸다.
“…살아남았네.”